서울고법 잇단 환수불가 판결, 1인1개소법 무력화 시도로 지목
대법원 판례 확정되면 의료기관 복수개설 실질적 제재수단 상실
헌재판결 악영향도 우려 … 차기선거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될 듯

1인1개소법 위헌여부를 가리는 헌재 판결이 결국 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올초 공개변론으로 사회적 관심이 모이며 올해 안에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됐지만, 하반기 들어 김영란법 등 굵직한 사안이 연달아 터진데다 최근엔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맞물려 빠른 시일 안에 결론이 나긴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하지만 판결을 놓고 장고에 돌입한 헌재의 스탠스가 합헌을 바라는 치과계엔 불리할 것이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헌재 입장변화에 민감한 위헌론자들의 의견서 제출내용이 위헌보다 부분위헌 쪽으로 변경되는 등 헌재가 합헌 판결 쪽으로 기운 정황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헌재의 기류변화엔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1인1개소법 사수모임의 릴레이 1인시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준래 선임전문연구위원(변호사)은 "1인시위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순 없지만 합헌 측 입장을 눈에 볼 수 있게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건 중요하다"며 "최근 헌재 입장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처럼 헌재 판결이 합헌으로 가닥이 잡혀가자 위헌론자들은 헌재 위헌판결과 별개로 급여환수와 관련해 유리한 판례를 만들어 1인1개소법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10월 T병원에 이어, 최근 R병원에 대해서도 "1인1개소법을 위반해 복수 개설된 의료기관이더라도 개설자가 의료인이라면 요양급여를 환수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급여환수까지 가능한 비의료인 명의 사무장병원과 달리, 1인1개소법 위반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형사처분으로 국한시킨 것. 이는 그간 비의료인 명의 사무장병원과 의료인이 복수개설한 의료기관을 동일시해온 행정당국의 입장과는 차이가 큰 판결이다.

사실 1인1개소법 위반 의료인 입장선 형사처벌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실형이 구형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다, 벌금액수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백억대에 달하는 거액의 환수처분은 이들에게도 큰 부담이다. 막대한 금전적 피해에 더해 급여청구까지 막히면 사실상 의료기관 운영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급여환수 처분은 1인1개소법 위반 의료인에 대해 실질적인 제재수단으로 기능해왔다.

서울고법의 판결이 대법원서 확정된다면 이 같은 제재수단을 빼앗기게 되는 셈이다.

김준래 위원은 "의료인의 의료기관 복수개설 금지가 위법이라면 당연히 그에 따른 급여비용도 받아갈 수 없도록 해야만 입법자의 입법의사에 부합한다"며 "서울고법 판결대로라면 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여러 개 개설하고 싶을 때 형사처벌만 한 번 받으면 여러 의료기관을 개설해도 더 이상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지지 않게 되어 법질서가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 상황선 헌재 판결보다 대법원 판례가 먼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이 경우 헌재 판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헌재서 1인1개소법이 합헌으로 유지된다고 해도, 대법원서 판결이 확정되면 1인1개소법이 법 적용단계서 무력화될 수 있다. 치과계가 위기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이는 다가올 차기선거에서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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