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 일부 재료상, 쇼핑몰 원가이하 판매가 책정 늘어
턱없이 줄어든 마진폭에 유통업계 ‘몸집 줄이기’ 한창
업계 “이대로는 영세업체 줄도산 이어질 것” 위기감 고조

치과의료기기 유통업계가 도 넘은 출혈경쟁으로 공멸로 치닫고 있다. 장기불황에 수년째 이어진 춘궁기로 인해 ‘일단 매출이라도 확보하자’는 심산으로 마진폭을 줄이는 재료상이 급격히 늘어난 것. 원가이하의 판매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마진폭은 점점 줄어드는데 물가상승에 고정비용은 늘어나니, 중소 규모 유통업체 입장선 몸집을 줄이지 않고선 버틸 도리가 없다. 이에 서울역 일대 유통업계엔 그 어느 때보다 침체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결국 공멸하고 말 것이란 위기감이다.

이미 업계선 ‘가격’이 매출을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된지 오래다. 치열해진 경쟁 속에 몇백원 차이로 거래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거래가 일반화되고 기존 유통업체에 비해 유통마진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쇼핑몰이 득세하면서 유통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서울역 인근서 수십년간 유통업을 이어온 한 도매업체 대표는 “주문이 들어와 제품을 팔아도 직원 월급, 배송비 등 고정비용을 제하면 남는 게 없을 만큼 마진폭이 줄어든 상황”이라며 “그나마 매출은 어느 정도 유지되지만, 순이익을 따지면 암울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숨지었다.

이어 “경쟁이 심해지고 일단 나부터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보니 다른 업체서 뻔히 정상가로 판매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자기 제품 사면 그 제품을 덤으로 껴주거나 원가이하로 깎아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현금 유동성이 빡빡한 중소 업체 입장선 매달 매출이라도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마스크, 글러브 등 위생용품을 비롯해 소모율이 높은 제품일수록 이 같은 경향은 두드러진다. 잘 유지되던 가격이 불과 몇 달 사이에 20%나 10%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온라인쇼핑몰이나 몇몇 재료상이 ‘가격장난’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수입·제조업체가 신경 쓰기 어려운 주말이나 월말에 며칠 ‘반짝 할인’으로 가격을 흐리는가 하면, 빠다(바터)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쇼핑몰엔 일절 납품하지 않았던 제품이 돌고 돌아 어느 날 쇼핑몰 특판 목록에 올라 버리면 영세업체 입장선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요즘 같은 상황서 가격을 한 번 내리기는 쉬워도, 다시 올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수입업체 대표는 “일부 품목의 경우 치과 입장선 돈 주고 사는 것 자체가 손해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시장가격이 난장판”이라며 “당장 몇 달 후도 예측하기 힘들다 보니 손절매 하는 마음으로 가격이야 어떻든 일단 쌓여있는 재고부터 처리하고 보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수금사고라도 한 번 터지면 물려있는 영세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며 “그러다보니 잘 나가는 제품 몇 개만 남겨두고 돈 안 되는 품목은 정리하거나, 사무실을 옮기고 직원 수를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는 업체가 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각종 전시회도 업체들의 힘을 빼고 있다. 국내 전시문화 자체가 제품홍보가 아닌 전시특판 명목의 현장판매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업체 입장선 오히려 손해 보는 구조로 바뀌어버린 것. 특히 올해는 일정을 앞당겨 치러진 시덱스로 인한 여파가 유독 오래 이어져 전시참가 업체들의 한숨이 깊다.

한 업체 관계자는 “2~3일 열리는 전시회서 특판가로 바짝 물량을 소모하고 나면, 그 뒤 한두 달은 주문이 줄어 고생하기 마련”이라며 “부스비는 부스비대로 드는데 따져보면 매출향상 효과는커녕 줄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크고 작은 전시회가 늘어 이젠 전시회 끝내고 나면 다른 전시회 준비하는 일정이 예사”라며 “돈은 돈대로 쓰고 손에 남는 것은 없는데 안 나갈 수도 없으니 사면초가”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개원의 입장선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울 수 있다. 하지만 마냥 반길 일만도 아니다.

업력이 오래된 한 유통업체 대표는 “가격이 흐려진 시장엔 품질이 좋은 제품이 들어설 수 없다”며 “이 같은 출혈경쟁이 지속될수록 개원의들의 선택지엔 질이 떨어지는 제품만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이 계속 공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모두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급급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머리를 맞대고 유통질서 회복방안을 모색하는 유관단체의 노력과 업계 스스로의 자정노력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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