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의 가치 설명 없이 단순한 가격상담으론 이해 어려워

네가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무책임이고, 내가 늦은 것은 차가 막혔기 때문이다. 네가 내 생일을 잊어버린 것은 사랑이 식은 것이고, 내가 네 생일을 잊어버린 것은 단순한 실수다.

나의 실수는 어쩌다 일어난 일이고, 네가 하는 실수는 원래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자기중심적 사고인가. 내가 제시한 금액은 합리적이고, 환자가 말하는 금액은 황당하다. 과연 그럴까.

며칠 전 환자에게 합리적으로 가격을 할인해주는 방법을 강의한다는 세미나정보를 접했다. 그 합리적인 가격할인이 어떤 기준으로 설정되는지 궁금해진다. 내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세미나를 듣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같은 컵을 놓고 사고 팔 때의 가격을 적어보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설문 참가자들은 100퍼센트 팔아야 할 때는 높은 가격을, 사야 할 때는 낮은 가격을 명시하였다. 그렇다면 그 중간쯤이 합리적인 가격일까? 컵이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 재질에 따라 가격은 형성될 것이다. 또한 구매자가 인정하는 것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결국 합리적인 가격은  필요한 욕구에 따라 유동성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100만원 아니면 그냥 다른 치과로 갈 거야” 다른 치과서는 더 싸게도 해준다며 무조건 그 가격에 맞추어 달라고 요구한다. 한 번 생각해 보자.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치과에 찾아와서 협박에 가까운 배짱으로 할인을 요구할까.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면을 들여다 볼 때 가격은 답이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선 많은 치과들이 어느새 가격에 말려들어 상담실장은 환자와 가격 밀당을 하고 있다. 이런 경우 할인 없는 상담은 불가능해진다.

많은 상담실장들이 가격할인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다. 수년 전부터 커피숍들이 부쩍 늘어났다. 같은 건물에도 두 개씩 있는 경우가 많다. 치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랜 친구가 잘 다니던 회사생활을 접고 커피숍을 차렸다. 처음에는 살아남고자 1000원에  커피를 팔았다고 한다. 주변 커피숍이 대략 3500원에 팔고 있으니 가격만 싸게 하면 문전성시를 이루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의외로 손님이 없었단다. 궁여지책 끝에 마케팅을 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 3000원짜리를 1500에 제공하고, 취급하는 원두는 고급형이라고 입구에 팻말을 걸었단다. 그러자 확연하게 경쟁 가게보다 손님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 경우에는 싼 커피를 싸게 파는 게 아니라 경쟁사와 비슷한 가격의 커피를 싸게 판다는 것에 방점이 찍혔을 것이다. 더군다나 고급원두라는 명시도 있었으니 경쟁사와 같은 가격대의 커피를 싸게 먹을 수 있다는 착각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소비자들은 경쟁사의 원두가 무엇인지 비교하기보다, 굳이 내가 사람을 속이지 않으니 남도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찾아보면 인간의 심리를 적절하게 사용한 경우는 많다. 그러나 치과는 가격만의 문제일까. 이미 만들어 놓은 상품을 파는 것도 아니고, 같은 성질의 환자를 진료하는 것도 아니다. 개개인별로 다른 사람의 몸을 치료한다. 환자가 제시하는 가격에 휘말려서는 안 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이는 비보험 진료비를 치과마다 조금씩 다르게 설정됨이 허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의 가치 있는 진료가 술자의 능력에 따라 전달되는지 표준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가격 할인의 법칙을 세미나를 듣고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화이트 데이에 사과를 팔아보자. ‘맛좋고 싱싱한 사과가 3000원’이라고 외치는 팀과 ‘사랑의 사과가 있습니다. 혹시나 싸웠거나 다투어서 사과가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의 사과를 선물하세요’라고 외친다면 당신은 어떤 사과를 사고 싶겠는가?

각기 다른 비보험 진료 상담에는 술자의 능력을 알 수 있는 비슷한 경우의 다양한 케이스가 통계로 제시되는 게 유리하다. 진료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가격이 형성된 배경도 설명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상담은 단순한 설명과는 다르다. 환자가 받아야 하는 진료를 나열하며 가격을 알려주는 건 설명에 불과하다.

상담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이해를 증진시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발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격만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하게 하는 것은 공산품처럼 같은 상품일 때다. 진료상담은 환자가 구강건강에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여 환자를 이해시키고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전문지식을 동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렵고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상담을 할 때 가격에 매몰되어 마치 가격만이 선택의 이유인 것처럼 밀당을 하는 오류를 범해선 곤란하다. 다양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미나로만 듣는 상담교육이 아니라 심리학과 자신의 말에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 인문학 공부도 필요하다. 어차피 상담은 사람을 상대로 진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료비 할인해 준다고 예후가 안 좋은 것까지 용납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싸게 해준다고 대충 치료하는 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키울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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