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쯤은 고단한 고민 내려놓고 빗겨서면 어떨까”

다나에는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의 딸이다. 아크리시오스 왕은 자신의 딸 다나에가 낳은 자식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다나에를 청동으로 만든 탑에 가둔다.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탑에 갇혀 있으니, 그녀는 그야말로 깨끗한 순결의 상징이 되었다. 아크리시오스 왕은 그녀에게 사랑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며, 세상 또한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제우스가 그런 그녀를 그냥 지나가겠는가. 제우스는 황금비로 스며들어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는 페르세우스를 낳는다.

황금비로 내리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표정이 아름답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운명 앞에 순종하며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은 순결한 백치미보다 황홀하다.

황금비로 내리는 사랑이 크림트의 마성의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표현되었다. 수많은 화가들이 다나에를 그렸지만, 나는 크림트의 다나에가 그녀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에로틱한 탐미적 성향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크림트를 일부만 아는 것이다. 크림트는 인간의 생물학적 근원에 대한 고민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의 많은 기하학적 무늬가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들이 많다.

가슴으로 끌어안으며 그 사랑에 묻혀버린 다나에의 표정은 한없이 부드럽다. 노을처럼 붉은 그녀의 머릿결이 달콤하게 물들어 흘러내린다. 검은 실루엣에 상징처럼 그려진 남녀의 연결고리는 어우러져 춤을 추고, 흘러넘치는 황금비는 그녀를 가득 채운다.

거부할 수 없는 그녀의 시간, 갇혀 있는 그녀에게 사랑은 충만 가득한 빛이었으리라. 갇혀 있다하여 사랑은 빗겨가지 않는다. 스며들 사랑은 스며들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사람에게 사랑은 깃들기 마련이다.

그 사랑은 페르세우스를 낳게 되고, 신탁이 두려워 딸을 청동 탑에 가두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순결한 처녀로 만든 아크리시오스 왕은 결국 손자의 손에 죽고 만다.

이 이야기는 신화지만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때로 운명은 그렇게 가혹하게 거부되지 않는 정해진 길을 간다.
차라리 몸부림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약은 없지만 설령 그리 했다 해도 어쩌면 그녀는 결국 사랑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크리시오스 왕이 비정하게 딸을 죽였다면, 운명은 빗겨갔을까? 또 다른 인연의 고리가 될 일은 그리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치과서도 구성원들은 하루를 아웅다웅 부딪치면서 살아간다. 어쩌면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고 빗겨갈 일은 이미 빗겨갔을 것이다. 오늘 하루쯤은 잠시 환자, 수익, 경영, 지출 등 모든 고단한 고민들을 내려놓고 벗어나면 어떨까.
오늘 크림트의 다나에를 보며 문득 들었던 생각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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