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자유로운 새가 있었다. 다른 새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날고, 열매를 먹고, 푸른 목청을 자랑했다. 그런데 그 새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 날 때마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작은 돌 하나씩을 모아 지니고 다니면서 꺼내보며 웃고 울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돌들은 많아졌고, 어느 날부터 새는 돌들이 무거워 날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새는 추억이 묻어있는 돌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새는 무거워진 돌들 때문에 움직일 수도 없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어갔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류시화의 신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의 앞부분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지난 온 삶에 발목 잡혀 살고 있지는 않은가. 슬픈 일, 즐거운 일, 괴로운 일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보따리를 한 아름 안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또한 지나간 시간의 영화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며칠 전 새로 치과에 입사한 직원이 있다. 그런데 이 직원은 혼자만 입사한 게 아니라 ‘예전치과’와 함께 치과에 출근을 하고 있다. “예전 원장님은 이렇게 하셨는데…”, “예전 치과선 이렇게 했었는데…”, 심지어는 “예전 치과에서는 이렇게 안했거든요”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했다.
처음 한두 번은 적응이 필요하겠거니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장단점을 떠나 “예전치과와 너무 달라서요”, “예전치과에선 해외여행도 갔어요”, “예전치과에선 자주 회식을 했었거든요” 매일 전 근무처와 비교하면서 분위기를 흐려갔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 직원이 우리치과서 면접을 볼 때 이전치과 퇴사사유가 ‘자신하고 잘 맞지 않아서라고’ 답변했다는 점이다. 잘 맞지 않아 퇴사해 놓고  새로 입사한 치과에선 ‘예전치과 타령’만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직원이 그냥 과거지향적인 성향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문제가 심각했다. 따로 불러 ‘우리치과와는 안 맞는 것 같다’며 권고사직이라도 시켜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언어습관이 직원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치과입장에서도 “예전 실장이 좋았지”, “OOO직원이 있을 때는 내가 신경 쓸게 없었는데…” 등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나간 돌들을 가슴에 품고 수시로 꺼내보며 추억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새처럼.

사람의 관계성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목도할 수 있다. “너 예전에는 안 그랬었잖아”, 현재를 살고 있음에도 온통 과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람은 변해야 한다. 시간이 변하고 공간도 변하고 만나는 사람도 변하는데 항상 예전처럼 살 수는 없다.
새로운 시간을 살아야 한다. 경쟁이 치열하여 지금 환자유치가 어렵다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작년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하며 추억하고 있다면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들은 내려놓아야 한다. 비워야만 다시 만들고 채워갈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에 매몰되어 ‘왜 변하느냐’고 다그치면 결국 멀어질 뿐이다. 
새로 입사한 직원은 새로운 조직의 장단점을 겪어보고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개선해 나가는 의지를 가지고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치과도 자신도 발전을 하는 것이다.
해보고 아니면 떠나버리면 나 아닌 또 누군가와 와서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길들여 지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시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 다름을 인정하는 열린 시각으로 서로 소통하는 자세로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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