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시키니까 하는 것일 뿐이라는 직원의 안일한 자세론 성장 어려워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다. 모든 악행을 저질러 놓고도 미꾸라지처럼 법의 단죄를 빠져 나간다 해서 일명 ‘법꾸라지’라는 별명이 붙은 김기춘도 구속시킨 게 바로 블랙리스트 스캔들이다.
어디까지 단죄해야 하나 영혼 없이 일한 무수한 미생은 접어두고 법적인 책임은 차관급까지라는 기사를 접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전범자 아이히만이 떠오른다.

수백만명의 유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는 증언을 듣고 심리학자들은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대표적인 실험이 필립 짐바르도 박사의 스탠퍼스 감옥실험.

특별한 인간이 악인이 아니라 누구나에게 내재되어 있는 악함으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역할에 따라 잔인해 질 수 있음을 설명한 실험이다. 굳이 심리학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흔히 접하는 갑과 을의 관계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을이 되었을 때와 갑이 되었을 때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저 시키는 대로 리스트를 만들었을 뿐이라는 성실한 공무원의 항변과 상황에 매몰되어 명령에 순응한 아이히만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나만의 오버일까.

사회적 악과 폭력의 본질에 대해 연구했던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너무나 적나라하게 비쳐지고 있다. 아렌트는 악의 진부성에 대한 보고에서 악의 평범성은 무능에서 시작된다고 규정한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 그 무능함이 명령에 순응하여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해온 온갖 악행의 몸체인 김기춘이 정작 자신의 아내를 에스코트하는 화면을 보면 씁쓸한 마음에 하루를 망치곤 한다.

그리고 환자관리를 하라는 오더에 전화했으나 받지 않음, 내원해달라고 문자보냄이라는 영혼없는 메모 한 줄을 볼 때, 오더의 목적을 잊어버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은 너무 앞서간 걸까.

정기검진, 진료중단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라는 목적은 환자상태를 점검하고 주치의로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전달하는 일이다. 스텝들 노는 게 보기 싫다고 오더하는 게 아니다. 잠시 쉬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는 더욱 아니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무수히 많은 병원들 속에서 살아남고자 노력하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절실하게 환자의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노력 없이 어찌 환자가 나를 찾아줄 것인가? 나 말고도 문밖만 나서면 친절하고 진료 잘하는 의사와 치과들은 넘쳐난다.

예약해놓고 내원하지 않으면 환자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다음 예약은 언제가 좋은지, 진료가 늦어지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고지하고 때를 놓치지 않고 진료 받아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게 환자를 위해 의사가 해야 하는 기본이다.
‘전화 안 해도 올 사람은 다 온다, 자주 전화 하는 거 환자가 부담스러워 한다, 예약을 정확히 지키는 분도 아니니 언젠가 올 것이다’ 이런 아집성 변명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

치과에서 진료중단 환자는 더욱 심각하게 관리되어져야 한다. 시작한 진료가 마무리 되지 않았으면 자칫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고, 시기를 놓쳐 더 악화될 수도 있다.
‘바쁜가 보다, 전화를 잘 안 받는다, 진료 안 받으면 환자 손해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라’는 직원의 변명을 듣고 있노라면 어이가 없다. 스텝의 생각을 듣고자 하는 게 아니라 환자를 위해 아는 우리가 관리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직원이 원장만큼 절실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 설명한 목적은 알고 일을 해야지 ‘시키니까 한다는 영혼 없는 자세’는 아쉽기 그지없다.
지시자는 직원에게 업무 수행했다는 증거를 남겨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라니까 전화했다가 안되면 그저 ‘전화 연결 안됨’이라고 남겨 놓을 게 아니라 00일 다시 전화할 예정이라는 정성스런 메모와 정말 다시 전화해보길 바라고 있다.

환자관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하는 일이다. 그것 챙기지 않았다고 화를 내느냐고 삐지고, 어떻게 모든 환자를 다 챙기느냐고 항변할 게 아니라 병원은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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