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바꾼다는 것은 시련과 고뇌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

한 여인이 발가벗은 채 말을 타고 있다. 화가들의 누드화 쯤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그림이다. 아직은 어린 소녀의 몸이니 더욱 뭇 남성의 성의 판타지쯤으로 보여 질 수도 있다. 그림을 보는 건 느낌만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사연을 알고 보지 않으면 그냥 흔한 19금 그림쯤으로 전락될 수도 있다.

이 그림은 영국의 화가 ‘존콜리어의 고다이버부인’이다. 아직은 어린 소녀처럼 갸날픈 몸이 조금은 부끄러운 듯 머리로 몸을 가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잉글랜드 코벤트리 영주의 아내 고다이버는 소작농들에게 너무 가혹한 세금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세금을 낮추라고 요구한다. 그러자 영주는 비웃으며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당신이 내일 아침 발가벗은 채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한다.

어찌 남편이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는지 아마도 그녀는 원치 않은 결혼을 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17살 어린 부인은 고뇌한다. ‘어찌 발가벗고 온 영지를 돈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수치심으로 숨고 싶은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실행하기로 마음먹는다.

붉은 천으로 감싼 백마 위에 올라탄 그녀의 몸은 한없이 여리고 왜소한 느낌마저 든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내면의 용기가 웅장한 중세 건물에도 압도되지 않고 부드럽게 쏟아진 살빛에 녹아들어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녀의 소식을 들은 소작농들은 누구도 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그녀가 행여 수치심을 느끼는 일이 없게 하고자 함이었다. 외설스럽게 훔쳐본 몇몇 남자들은 신의 노여움으로 돌이 되어 버렸다는 전설이 더해졌다. 그녀의 행동은 신의 마음마저 움직였던 사랑에서 비롯된 용기다.

이때부터 역학에 불응하고 대담한 역의 논리로 새롭게 뚫고 나가는 정치를 그녀의 이름을 따 ‘고다이버즘’이라고 불린다.

무엇을 바꾼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소작농에게 가혹한 세금정책을 바꾸기 위해 17살의 수줍음 많은 그녀가 발가벗은 채 말을 타고 영지를 돌았다. 이는 쉽지 않고 용기를 내고 시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고뇌를 했겠는가.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만큼 무엇을 바꾼다는 것은 시련과 고뇌가 따르는 일이라고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누구도 하지 않던 일을 하는 것, 옳다고 믿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때로는 많은 구설이 따르기 마련이다. 또한 변화를 싫어하는 집단의 저항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길들여지고 익숙해진다는 것은 결국 편해진다는 의미이므로, 누구도 힘든 모험을 강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강자의 조건은 변화와 관습타파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상처받을 게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은 없다. 저항이 두려워 옳다고 믿는 신념을 설득해보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은 매너리즘에 불과하다.

치과도 그 구성원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 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치과는 한단계 더 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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