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보상제도는 구성원으로 하여금 동기부여 효과 커

일선 동네치과서도 인센티브를 적용하는 예는 흔하다. 운영하는 방식에 따라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심리는 외적인 수당이 주는 달콤함을 배척하기 어렵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한 달 만에 한양을 빼앗겼고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달아났다. 임진왜란 승리의 요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리의 이순신장군과 명나라의 개입, 승병과 의병의 역할 등 다양한 요인이 거론되나 몸으로 싸움에 임한 백성이 승리의 주축이란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중앙정부는 전국적으로 군대를 동원하고 군량을 모으고 공로자에게 포상을 해야 하는데 피난정부를 꾸리고 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기록하였다가 나중에 포상하겠다’고 하자 왕이 도망가고 나라가 언제 끝장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중에 주겠다는 말을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러자 다급해진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공명첩이었다. 지휘관이나 지방관이 백지 임명장을 받아 군에 자원하거나 군량을 바치거나 공을 세우면 즉석에서 이름을 적었다. 식량을 모으는데 공명첩은 매우 유용했다. 엄격한 신분제도에서 벼슬을 얻거나 천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더 열심히 공을 세우고자 했을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인센티브였다. 때로는 인센티브가 일을 독려하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그 와중에도 공의 크기에 따라 여러 종류의 공명첩을 운영하였다. 벼슬을 주는 임명장, 향리 역을 면제해 주는 면향첩, 군역이나 역리, 나루터지기 같은 신분 역을 면해주는 면역첩, 노비신분을 면해주는 면천법 등으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물론 훗날 남용되어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공갈첩이 되었지만 전란 때는 많은 효과를 거둔 게 사실이었다.

그 중에서도 공명홍패가 자장 존귀한 것이었다. 공명홍패는 진짜 과거급제 증명서였다. 공명홍패는 반드시 왜군의 목을 베어 오는 사람에게만 주었다. 왜군 한 명을 죽이면 무과급제로 인정했다. 무과에는 초시와 도시가 있는데, 왜군 한명을 죽이면 초시합격, 또 한명을 죽이면 도시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왜군을 제일 많이 죽인 사람은 장원급제로 쳤다.

왜군을 죽인 것은 목을 베어오거나 귀를 가져오는 것으로 증명했다. 조선시대 최초의 인센티브의 제도화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인간은 보상이 보장되는 일에 더 심혈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얻고자 하는 욕망이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도 구하고 벼슬까지 얻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인센티브를 미끼로 달성이 어려운 과도한 목표를 제시해선 안 된다. 만약 왜군 100명의 목을 베어 와야 한다고 하면 어땠을까. 나라가 있어야 백성이 있다는 명분만으로 백성이 목숨을 내놓고 싸웠을까. 과도한 목표가 주어졌다면 동기부여는 커녕 오히려 포기하고 제도를 비난했을 것이다. 같은 처지의 동료가 왜군을 한 명 죽여 어렵지 않게 천민의 사슬을 벗고 무관이 되는 것을 보면 그리 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인센티브는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거나 편법이 나오기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편법은 나타났다. 오죽했으면 왜군의 귀 하나를 베어오는 방식도 나중엔 바뀐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귀가 두 개여서 편법이 난무하자 귀를 인정하지 않게 된 것이다.

치과에서 인센티브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제도다. 치과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다른 치과의 인센티브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렇다고 보상이 없는 조직운영은 성장에 한계가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잘못된 인센티브 운영은 오히려 부작용만 야기시킬 수도 있다.

그만큼 치과에서 인센티브 도입할 때는 치밀한 분석과 디테일한 규정이 충족되어야 한다. 여기에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각종 편법이 개입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유연한 대처도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보면 내 치과에 맞는 인센티브 제도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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