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에나 실장에게 직원은 ‘버릇없는 존재’

어느 날 4시에 예약했다며 환자가 내원했다. 예약 창을 아무리 뒤져도 환자 이름은 없다. 원장은 아직 수술 중이다. 환자가 잘못 알았다면 다음 예약일이 있어야 하는데 다음예약이 잡혀 있지도 않다. 예약 누락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 다음 상황이다. 실장이 당황해서 인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목적인지 ‘스텝이 예약실수를 한 것 같다 많이 기다릴 수 있으니 내일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응대한다. 내일 내원하면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인다. 불편한 심기가 역력했지만 당장 원장이 수술중이라는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 환자는 다시 예약을 잡는다. 실장은 더 없이 친절하게 직원의 예약실수임을 여러 번 강조한다.

고객이 지불하는 비용은 단순히 직접 수납하는 치료비만이 아니다. 치과에 내원함으로 인해  하지 못하게 된 다른 일에 대한 시간적 기회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시간이 중요한 만큼 환자의 시간도 중요하다. 사과를 하고 다음 예약을 잡은 것은 좋다.

그러나 꼭 스텝의 실수라고 강조하는 게 옳았을까. 이 경우 자신의 실수든 스텝의 실수든 병원이 실수한 게 맞다. 스텝에게 책임을 떠넘긴다고 실수가 없어지거나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구차한 핑계는 환자의 불편을 감소시키지 못한다. 환자는 어쩔 수 없으니 다음 예약을 했을 뿐이지 잘못된 약속을 실장이 개선한 것으로 믿지는 않는다. 아랫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한 실장의 응대는 환자로 하여금 또 다른 불평을 야기시킬 수 있다. 직원의 실수든 실장의 실수든 환자에겐 병원의 실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환자는 실장님이 잡아준 예약시간 아니었어요, 내일 환자분이 오시면 제가 사과해야 하나요?” 그 과정을 보고 있던 스텝은 환자가 돌아간 후 항의한다.

실장은 “너라고 꼭 집어 말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라며 정색하고 대꾸한다. 환자에게 사과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니 ‘그렇게 따질 필요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요즘 애들은 사소한 것도 꼭 따지고 든다’며 혼잣말도 아니고 직원에게 하는 말도 아닌 목소리 톤으로 한마디 더 던진다. 직원이 이해 못하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자 ‘서로 피곤하게 같이 일하면서 굳이 시시비비 가릴 필요있냐’고 마무리 한다.

그리곤 하소연 한다. 정말 요즈음 일하기 힘들다고. 직원들이 상사에 대해 공손하지 않고 사소한 것도 꼬치꼬치 대들고 따진단다. 그러면서 ‘우린 그때 안 그랬다’고 말한다. ‘우리 땐 실장이 하는 일이면 뭐든지 이유가 있겠지’하고 모두 수긍했다고 덧붙인다.

실장 말대로 정말 그랬을까. 그 나이에 그 상황에 조용히 순종하며 그러려니 이해하고 그냥 넘어갔을까.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나면 자신은 처음부터 작은 나비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성숙의 과정이 모두 거짓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른들은 ‘젊은이들은 버릇없고 자기 절제가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훈계는 상당부분 근거가 없다.

단지 현재시점서 과거를 왜곡하는 현상일 뿐이다. 함께 겪었던 같은 사건도 시간이 흐르면 기억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는 자신의 가치관이 계속 투영되어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으로 해석되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스텝이 실수했다고 해도 직원을 책임지는 실장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다. 아마도 내 책임이라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과정에서 스텝의 실수를 핑계 삼아 고객 불신의 눈초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스텝의 상처야 자신이 또 다독이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텝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직원 탓으로 돌리는 환자와의 소통을 배울 만 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실장과 직원의 관계는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오히려 스텝이 실수했다 해도 실장은 자신의 불찰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자신의 불찰로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이 전달되면 고객은 더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면 수습될 일을 직원간의 갈등으로까지 번지게 할 필요는 없다. 실장 본인도 원장의 실수를 자신에게 돌리면 화가 날 수 있다. 실장과 직원 사이도 마찬가지다.

‘우리 땐 안 그랬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나의 부족함은 밀쳐놓고 상대의 행동만 탓하게 된다. 오히려 직원의 작은 실수를 보고 ‘괜찮아, 나도 너 나이 땐 그랬어’라고 하는 게 훨씬 신뢰감을 높일 수 있는 비결이다.

실장이든, 원장이든 ‘예전엔 안 그랬는데…’ 식의 얘기는 치과경영과 조직관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갇혀 그 기준으로 지금 구성원들과 소통하려 든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저작권자 © 덴탈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