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태창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해무’는 김한민 감독의 ‘명량’보다 더 큰 기대를 갖고 기다렸던 영화였다.

배를 잃을 위기에 몰린 선장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선원들과 함께 낡은 어선에 몸을 싣는다. 선장을 필두로, 배에 숨어사는 인정 많고 사연 많은 기관장, 선장의 명령을 묵묵히 따르는 행동파 갑판장, 돈이 세상에서 최고인 거친 성격의 롤러 수. 언제 어디서든 욕구에 충실한 선원, 이제 갓 뱃일을 시작한 순박한 막내 선원까지 여섯 명의 선원은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을 시작한다. 그러나 망망대해 한복판, 그들이 실어 나르게 된 것은 물고기가 아닌 사람이었다. 선장은 삶의 터전인 배를 지키기 위해 선원들에게 밀항을 돕는 일을 제안한다.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온 수많은 밀항자들, 그리고 운명의 한 배를 타게 된 여섯 명의 선원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어느 날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해무’가 몰려오고 그들은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이야기는 빨라진다. 밀항자와 개성 강한 선원들의 이야기가 바다안개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너무 기대가 되었다.

안개에 갇혀본 사람이라면 그 막막함을 알 것이다. 몇 년 전 한 밤 운전 중 서해대교에서 안개에 갇혀 극한의 공포에 갇힌 적이 있었다. 하얀 안개가 어둠이라는 무기를 들고 점점 조여오더니 시야를 삼켜버렸다. 순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아노미상태가 다가와 심장이 쪼그라들고 호흡이 빨라지면서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을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이를 알기에 해무에 갇힌 배 한척이 극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충돌 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인간이 그 상황을 스스로 부정도 긍정도 하지 못한 채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인간의 본능이 어떤 작용을 하게 될지 잔뜩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망망대해 배 한 척의 고뇌는 너무 짧았다. 영화는 피와 인간의 동물적 본능에 기인한 어설픈 사랑으로 합리화되어 삼류의 정서로 끝났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 매몰된 인간의 내면을 너무 1차원적으로만 다룬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감독은 어쩌면 그렇게 밖에 연출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떠한가? 원장님만 믿어요. 순한 양 같은 얼굴로 소문 듣고 왔다는 환자들이 많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면 전후 사정 고려 없이 정당한 진료행위도 독이 되어 공격의 무기가 되곤 한다.

장애를 가진 건장한 10대는 제어하기 쉽지 않다. 묶을 수도 없고 계속 이해를 시키며 진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학병원을 반드시 보내야 하는 중증환자도 아니다.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진료를 안 해주었다는 사연에 소개받아 왔다면 그냥 보내기 참 난감하다.

신경치료를 하고 보철로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러버댐을 걸고 진료하는 와중에 러버댐이 답답하다고 뜯어내며 구역질을 하더니 순식간에 음식물이 역류하여 파일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아뿔사 음식물과 함께 나와야 하는 파일은 보이지 않았다. 환자는 심한 기침을 하고, 힘은 왜 이리 센지 전혀 제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입안을 헹구는 과정에서 물까지 먹었는지 입안에 있어야 할 파일이 없었다.

토사물을 일일이 펼쳐가며 정밀조사 하였지만 허사였다. 주변 의원을 찾아 방사선으로 확인하니 목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crown은 삼켜도 기다리면 위로 넘어가고 결국 장을 통해 배출되겠지만 파일인지라 응급실로 이송하였다. 그 와중에 위까지 내려간 파일을 내시경으로 꺼내기로 결정되었다. 입안의 문제가 아닌 이상 다른 의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   변으로 나올 수도 있으니 기다려보자고 주장하기도 난감하였다.

그 순간부터 환자는 순한 양 같은 표정은 사라진 채 1인실에 입원하겠다고 요구해 왔다. 보호자는 ‘이럴 수가 있느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애인을 볼 수 없었음 처음부터 못한다고 했어야 한다고 화를 냈다. 나아가 명백한 의사의 과실이니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해줘야 한다고 노발대발 큰소리가 이어졌다. 일단은 진료를 잘 마치는 게 중요하니 퇴원하신 다음 이야기하시자고 했지만 불 보듯 뻔한 예상이 가능했다.

치과입장에선 입원비, 진료비 요구는 그래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보호자가 며칠 병간호를 하느라 일을 못했으니 그 비용까지 보상하고 정신적 피해까지 해달라는 요구는 참으로 난감했다.
러버댐까지 했으면 진료과정에는 문제가 없었고, 정상적인 의사소통이나 구토하는 과정서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에 따르는 비용을 지불했다면 최선을 다했건만.

정신적 피해 보상뿐만 아니라 실질적 보상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그래도 어찌 하리, 화내며 싸우면 더욱 커질 손해이기에 조용조용히 설명을 해줄 수밖에. 모든 걸 최선을 다했으니 더 뭔가 해줄 순 없는 일이며, 더 무언가 필요하면 그 다음은 소비자 보호원도 있고 분쟁위원회도 있고 변호사를 선임하셔도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환자의 선하고 아름다운 얼굴은 환자가 원하는 대로 되었을 때뿐임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사람이 무서운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한숨을 쉬며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고 위안했다.

그리고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결국 너무나 쉽게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오직 하나만을 생각하며 동료로 함께한 시절 같은 건 무시된 채 본능적이고 동물 같은 갈증으로 너무나 쉽게 변질되어 버린 해무의 선원들이 떠올랐다.

저작권자 © 덴탈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