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는 여기가 제일 잘한다고 옆 치과서 소개시켜줬어요”

구강을 들여다보니 온통 반짝반짝 인레이다. 허걱! 돈 되는 진료는 다하고 어렵고 힘든 사랑니 잘 뽑는다고 소개시켜 보냈단 말인가. 인간이기에 잠시 배신감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나마 신환이라면 서운함이 덜 할 텐데, 처음 내원해서 진료상담 다 받고 치료계획 줄줄이 적어놨건만 임플란트도 식립하고 보철도 하고, 오로지 사랑니 뽑으러 다시 온 케이스다. 속으론 뒷통수를 갈겨주고 싶은데, 이를 어찌할까.

상담 해보니 우리치과가 너무 비싸서 거기서 했다는 변명에 한 번 더 절망한다. 치료를 다 하고 나니 사랑니는 어렵다고 대학병원 가라고해서 알아보니, 여기가 제일 잘한다 해서 왔다는 칭찬 아닌 칭찬이 나를 더 슬프게 한다.

사람이다, 나두 사람이라고. 당신 같으면 돈 되는 치료 다하고 그 어렵고 위험하기까지 한 사랑니만 빼러 왔다면 좋겠냐고. 마음속으로만 한 소리 갈긴다. ‘병원도 경영이 되어야 인술을 베풀지’하고 말이다.

진료를 거부할 수도 없고, 어려워 발치 못한다고 할 수도 없다. 자기 친구가 자기랑 똑같은 경우였는데 여기서 뽑았다며 미리 퇴로를 막는다. 예약을 늦게 잡아주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할라치면 ‘사랑니 빼는 게 보험진료라고 무시하는 것’이냐고 되레 따진다.

메스도 보이고 익스플로러도 보이고 들고 나가야 하나(속으로만)? 바늘들고 나가 입을 봉합해버려야 하나? 혼자서 이러 저런 생각에 잠시 잠긴다. 다른 진료를 하면서도 온통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속으로 참고 또 참는다.

이 환자의 돈 되는 진료만 미리 싹 해치운 치과원장도 어찌보면 내 동료이거늘, ‘어찌 저리 해서 여기로 보냈을까’하고 원망도 든다. 어쩌자고 나만 잘 먹고 살면 되는 이 세태가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나? 못하면 최소한 처음부터 보내줘야 하지 않나? 살짝 서운한 마음마저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그러나 그 원장도 ‘수평지치 사랑니 뺄 실력은 안 되고, 개원은 했으니 먹고 살아야 하고 차라리 욕먹고 말자는 푸념이 더 무서운 걸 어찌할꼬. 개원을 하고 싶어 했냐고, 페이닥터 뽑아주는 치과는 없고, 그냥 놀 형편도 못되고 해서 대출받아 겨우 개원이라고 했는데, 덤핑이 대수냐 욕먹는 게 대수냐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생각일 것이라는 이해에 이르자 한숨만 나온다.

암울하다. 그리고 부럽다. 어찌 잘 꼬셨으면 구강내 문제를 다 해결하지도 않고 돈 되는 것만 쏙쏙 골라서 빼먹을 수 있는지 진료 때려 치우고 그 능력부터 전수 받으러 가야 하나. 환자는 소심한 복수도 아랑곳 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시간 맞추어 예약을 잡고 간다.

이놈의 전자차트는 예약 스케줄까지 환자에게 다 보이니 모르게 수술이 잡혀있다고 구라도 못 친다. 그래도 마음은 영 개운치가 않다. 대인배가 되어 보고자 고운 마음으로 진료를 하다가도 이놈의 수평지치가 잘 나오지 않음 잘 나와라 기도할 수도 없고,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싶다.

그리하여 소심한 목소리로 부탁해 본다. 제발 비보험진료를 다했음 보험진료도 열심히 해줘야 하는 게 도리라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키우던지 아니면 비보험진료까지 리퍼하는 예의를 갖추던지 말이다.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은 법’이라는 동서고금과 시대를 막론한 진리를 얘기해주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오늘도 리퍼환자라도 있음에 감사하며 또 하루를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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